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경기 여주]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고종 국구)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3. 4. 19. 10:00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고종 국구)

     

    명성황후의 부친인 민치록은 인현왕후의 부친인 민유중의 5대손이며, 민진후의 4대손이 된다.

    주소가 제대로 나와있지 않아 주소만 보고 찾아가면 무척 힘들다. 민진후 묘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맨 마지막에 민치록 묘가 있다.

    여기저기 나와있는 주소들이 모두 맞지않아 지도를 보고 주소를 찾아서 올리니 참고하시길...

    민치록 묘는 5번이나 이장하는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위치인 초장지로 되돌아온 희안한

    사연이 있는 묘이다. 조선시대 풍수가 남사고라는 사람이 자기 부친 묘를 9번이나 옮기고도

    제자리에 묘를 못 썼다더니 민치록 묘가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현재의 민치록 묘는 앞쪽이 그늘이 져 있어서 눈이 쌓여 있었다. 아마도 앞쪽에서 불어오는

    살풍을 막기위해 소나무를 심어 놓은듯 하나 소나무가 너무 커서 답답함을 주고 있다.

    장풍을 위해 좀 낮은 나무로 식재하고 앞쪽을 트여 햇빛이 들어야 할 것 같다.

    민치록(閔致祿)

    1799(정조 23)∼1858(철종 9). 조선 말기의 척신(戚臣).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아버지이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덕(元德), 호는 서하(棲霞).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아버지 유중(維重)의 5대손이다.
    민비는 치록의 재취인 좌찬성 이규년(李奎年)의 딸인 한산이씨(韓山李氏, 뒤에 韓昌府夫人으로 추봉)와의 사이에 태어난 1남3녀 가운데 한 딸이었는데 형제들이 모두 요절하여 무남독녀로 자랐다.
    1826년(순조 26) 문음(門蔭)으로 장릉참봉(章陵參奉)이 되었고, 그뒤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를 두루 거친 뒤 과천현감·임피현령(臨陂縣令) 등 지방수령으로 나가 활동하였다.
    다시 상경하여 조지서별감(造紙署別監)·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을 역임하고 다시 덕천군수(德川郡守)로 지방행정을 맡았다. 1855년(철종 6) 선혜청낭청(宣惠廳郎廳)을 맡았고, 1857년 영주군수의 일을 맡아보았다.
    그의 딸이 고종비로 입궁한 것은 그가 사망한 지 9년 뒤인 1866년(고종 3)의 일이다. 그뒤 영의정으로 추서되고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으로 봉작되었다. 승호(升鎬)가 입양되어 그의 가계를 이었다. 시호는 순간(純簡)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민치록(閔致祿) 묘 


    민치록(1799~1858)은 철종대(哲宗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원덕(元德), 호는 서하(棲霞)이다. 숙종의 국구(國舅)인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5세손이자 이조참판 민기현(閔耆顯, 1751~1811)의 아들이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생부(生父)이다. 1826년(순조 26) 문음(門蔭)으로 장릉참봉(章陵參奉)이 되었고 그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등을 두루 거친 뒤 과천(果川)과 임피(臨陂)에 지방 수령으로 나가 활동하였다. 그리고 1855년(철종 6) 선혜청낭청(宣惠廳郎廳)을 맡았고, 1857년에는 영주(榮州) 군수의 일을 맡아보았다. 고종(高宗)과 명성황후가 국혼(國婚)을 올린 것은 그가 죽은 지 9년 뒤인 1866년(고종 3)의 일이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으로 추봉(追封)되었으며 시호는 순간(純簡)이다.

    민치록 묘는 처음 여주 금교리(金橋里, 지금의 안금리)의 여흥민씨세장지 내에 조성되었다. 그러나 지세(地勢)가 좋지 않다 하여 제천(堤川)·이천(利川)·광주(廣州)로 계속 이장되는 고초를 겪다가 1894년(고종 31) 충청남도 보령(保寧)의 청연리(靑淵里)에 안장되었다. 하지만 2003년에 다시 초장지인 현재의 위치로 되돌아 왔으니 모두 5번을 옮긴 셈이다. 아마 이 같은 경우는 전무후무하며 조선시대 묘제 연구의 희귀한 예로 평가된다. 묘역에는 명성황후의 생부(生父)라는 신분에 걸맞게 혼유석, 상석, 고석, 향로석, 제주병석, 배설석, 차일석, 망주석, 문인석, 석양, 장명등의 모든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고종대말에 조선의 마지막 역량을 발휘해서 정성껏 만든 우수한 작품들로 조선시대 석물 조각사의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최근에 호석을 두른 봉분의 우측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가 세워져 있다. 오석의 비신(높이 156.5, 폭 59, 두께 27.5) 앞면에 “증영의정(贈領議政)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시순간(諡純簡) 민공치록지묘(閔公致祿之墓) 증해녕부부인(贈海寧府夫人) 오씨(吳氏) 부좌(祔左) 한창부부인(韓昌府夫人) 이씨(李氏) 부우(祔右)”라 써 놓은 글씨는, 그 우측 상단에 “예필(睿筆)”이라는 소전(小篆)이 있어 순종이 황태자 시절에 쓴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묘표음기는 의정부의정(議政府議政) 윤용선(尹容善, 1829~1904)이 짓고 사종손(四從孫) 원수부회계국총장(元帥府會計局總長)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이 썼으며 건립연대는 “광무(光武) 오년(五年) 신축(辛丑, 1901) 시월(十月) 일립(日立)”이다. 또한 묘역 아래에는 총 높이 약 4m의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신도비가, 넓직한 2단 기단석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순종이 세자 시절에 지은 비문을 불초손(不肖孫)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이 왕명을 받들어 썼으며, 비신(높이 268.5, 폭 105 두께 46.5)의 상단에 올린 전액은 고종이 친히 어필(御筆)로 휘호하였다. 비신의 사면(四面)에 각자(刻字)하였으며 입석연대는 “개국(開國) 오백삼년(五百三年) 갑오(甲午, 1894, 고종 31) 십이월(十二月) 일립(日立)”이다. 그러나 이건(移建)하면서 방부가 훼손되어 새로 신설(新設)하였으며, 비신의 좌측 하단도 약간 파손되었다.

    <여주군史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고종 국구)
      
       여흥민씨


     

     

     

     

     

     

     

     

     

    **민유중(인형왕후 부친) 가계도
    민기   민광훈     민시중
     
     
      민정중
    (좌의정)
      민진장
    (우의정)
     
     
      민유중
    (숙종국구)
      민진후   민익수   민백분   민기현   민치록
    (고종국구)
         
     
      민진원
    (우의정)
      민형수   민백상
    (우의정)
     
     
      민진영

     

    ▼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고종 국구)

    ▼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앞쪽은 그늘이 져 있다.

    ▼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 전경... 구 상석이 앞쪽에 놓여있다.

    ▼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비.. 두 부인과 함께 합장묘이다.

    ▼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 구 상석...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 석물...

     

    ▼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 측경..

     

    ▼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 후경.. 앞쪽에 눈이 쌓여있다. 소나무가 너무 높아 햇빛이 들지 않는다.

    ▼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 묘 뒷쪽에 있는 묘... 묘표가 없어 누구 묘인지 알 수 없다.




    ♡♡야초 풍수상담 바로가기


    ◐야초 실용풍수지리학회 강의 일정 안내

    강의 개설 장소

    강좌명

    강의 시간

    강의 기간

     수강신청 기간

    수강신청 연락처

    수강신청바로가기

    동방문화대학원

    대학교

    실용풍수지리

    매주 목요일

    10시~13시

    16주

    (1년과정)

     매년 학기 전

    (2월,8월)

    02- 3668-9890, 

    9871 ~ 2

    수강신청 바로가기

    성북문화원

    웰빙실용풍수

    매주 목요일 

    저녁 7시~8시30분

    12주

     분기(2월,

    5월,8월,11월)

    02- 765-1611

    수강신청 바로가기

    월곡1동 주민센타

    웰빙생활풍수

    기초과정

    매주 수요일 

    10시~12시

    12주

     매분기(3월,

    6월,9월,12월)

    02- 2241-5564

    수강신청 바로가기

    성북평생학습관

    복을 부르는

    생활풍수

    매주 목요일 

    14시~16시

    12주

     매년 반기 전

    (2월,8월)

    02-2241-2420

    수강신청 바로가기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