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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괴산]괴산 홍범식 고가(벽초 홍명희 생가, 일완 홍범식 고택)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8. 4. 27. 09:00


    괴산 홍범식 고가(벽초 홍명희 생가, 일완 홍범식 고택) 


    이곳은 근대소설 임꺽정으로 널리 알려진 홍명희 생가이다. 지금은 홍범식선생의 고택으로 더 알려져 있지만.... 이 집을 보면서 여러 사람들이 좋은 터, 흉한 터를 논하는데 어떤이는 아들이 이북으로 가서 집안이 풍비박산 된 것을 얘기하고, 어떤 이는 이북에서 부수상까지 했으니 크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래서 풍수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풍수는 절대로 과학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풍수는 인문학이다. 왜냐하면 그림이나 음악처럼 느끼는 사람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답이 있는게 아니라 같은 느낌과 생각 즉 공감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참 자주 하는데 아직도 자기 말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많은 풍수가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곳은 집 뒤에서 들어오는 용이 중원대학, 34번국도를 건너 고택 뒤 약 200m 무곡성을 만든 후 소원봉을 일구고 그 아래 낮은 택지에 입지하고 있다. 원래 이렇게 낮게 되었는지 앞쪽 동진천의 제방을 쌓고 도로를 만들면서 낮아진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입지 자체는 재물을 모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것이다. 집 뒤의 소원봉이 조금 높은 흠은 있지만 용맥이 집을 직접 충살하지 않고, 사랑채 뒤로 일정 공간을 확보하여 완충을 하였으며, 안채에도 창고를 뒷면에 배치하여 안채에 직접적인 충살을 방지하는 등 무난한 배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백호자락은 바람길을 충분히 막아주고 있어서 양택지로서 어려움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청룡쪽 골이 깊은 것이 거슬리는데 장남의 앞길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예상은 어쩔 수 없는 국세의 흠이라고 볼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혼동이 된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는데 고택 안내문에도 명확히 명시가 되어 있었지만, 자고로 고택의 안채는 외부에서 보이면 안되는 구조가 우리 선조들의 기본 사상이다. 그러니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사랑채와 달리 전혀 보이지 않는 집이 안채가 되는 것이니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비가 간간히 뿌리는 시간에 서둘러 답사를 마치느라 뒷산 소원봉에 오르지 못한게 조금 마음에 걸리는데 인터넷 상에 여러분들이 올려준 전경사진을 참고하여 살펴보니 내가 판단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고 본다.

     

    괴산 홍범식 고가


    조선 중기 중부지방 양반 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홍범식 고택'은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에 강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국열사 홍범식 전 금산군수(1871~1910)가 태어난 곳으로 문화재청에 등록된 명칭은 '괴산동부리고가'로 되어 있고 고택앞 안내판에는 '일완 홍범식고택'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남향으로 지어진 건물의 안채 구조는 전체적으로 정면 5칸·측면 6칸의 ‘ㄷ’자형으로 ‘一’자형 광채를 맞물리게 하여, 광채를 합한 안채는 ‘ㅁ’자형이다. 사랑채는 좌측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적으로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조화시키며 오밀조밀한 내부공간을 연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좌우대칭의 평면구조를 갖는 중부지방의 살림집의 특징적인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벽초 홍명희 생가


    홍범식 고택은 역사소설『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1888∼1968)의 생가로 최근 복원을 마쳤다. 홍범식 고택은 월북인사의 집이라 하여 아무도 돌보지 않아 오랜기간 방치 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허물어져 있었는데 소설 임꺽정이 정식 출간된 후에야 복원될 수 있었다. 

    벽초 홍명희 선생이 10년에 걸쳐 집필한 "임꺽정"은 민중의 삶을 탁월하게 재현한 역사소설로서 민족문학사에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충청북도 민속문화재 제14호(2002년 12월 20일 지정)

    문화재명칭

    괴산 홍범식 고가(벽초 홍명희 생가, 일완 홍범식 고택) 

    소재지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임꺽정로 16

    관리자(연락처)

    괴산군청

     

    괴산 홍범식 고가(벽초 홍명희 생가, 일완 홍범식 고택) 안내판

    괴산 홍범식 고가 전경(네이버지도에서 인용)

    괴산 홍범식 고가(다음 지도에서 인용)


    괴산 홍범식 고택


    이 가옥은 1730년(옹정 8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좌우대칭의 평면구조를 갖는 중부지방의 살림집의 특징적인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은 중문(中門)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안채, 서쪽에 사랑채를 좌우로 배치하고 사랑채 앞에 행랑채를 두었다.

    정남향으로 지어진 안채 구조는 정면 5칸·측변 6칸의 ㄷ자형 집으로 중앙에 큰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3칸씩의 방과 부엌을 두고 오른쪽에는 3칸 마루를, 서쪽에는 2칸 툇마루를 두었다. 앞으로 2칸의 별채가 있는데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왼쪽에 위치한 사랑채는 2고주 5량가이며, 장혀를 받친 남도리집이다. 지붕은 합각으로 처리하였다. 전체적으로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조화시키며 오밀조밀한 내부공간을 연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곳은 경술국치(庚戌國恥)에 항거 자결 순국한 금산군수(錦山郡守) 일완(一阮) 홍범식(洪範植, 1871~1910) 선생의 고택인 동시에 사랑채는 1919.3.19 괴산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고 전하는 3.1만세운동 유적이다. 또한 근대역사소설의 이정표가 된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壁初) 홍명희(洪命熹)의 고택으로도 널리 알려진 문학사적 유산이다.

    <현지안내문 인용>


    괴산 홍범식 고택 안내판

    괴산 홍범식 고가 대문

    괴산 홍범식 고가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행랑채, 사랑채가 있고, 전면에 보이는 건물이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다.

    괴산 홍범식 고가의 행랑채와 사랑채

    괴산 홍범식 고가 사랑채와 뒤로 보이는 소원봉

    ▼사랑채 옆에서 바라본 모습

    괴산 홍범식 고가 사랑채 뒤안... 소원봉에서 내려오는 충살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보인다.

    괴산 홍범식 고가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은 왼쪽 끝에 있다.

    괴산 홍범식 고가 담장 왼쪽은 사랑채, 전면의 왼쪽이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

    괴산 홍범식 고가 전경... 고택의 주맥(감싸주는 기운)은 소원봉에서 내려오고 청룡쪽으로 이어지는 요함 골은 장남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예측을 해볼 수 있다.

    괴산 홍범식 고가 안채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차벽이 설치되어 안쪽으로 꺾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괴산 홍범식 고가 안채 뒤안의 장독대와 광채... 소원봉에서 안채를 직접 충살하지 않도록 완충 역할을 한다.

    ▼학회 임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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