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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瑞山 明宗大王 胎室 및 碑)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8. 10. 15. 13:20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瑞山 明宗大王 胎室 및 碑)
서산 답사를 하다보면 마애삼존불, 보원사지를 거쳐 개심사를 가게 되는데 그 사이에 태봉이 높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이 명종대왕태실인데 근자에 보물로 지정이 되어서 찾게 되었다.
예전에는 목장 안쪽으로 빙 돌아서 들어가도록 되어있었는데 근자에 앞쪽으로 길을 내서 아주 가파르게 진입을 해야 한다. 이날 팔에 기브스 하신 어른이 함께 했는데 상당히 위험하게 느껴져 조심스러웠다.
명종태실은 특이하게 태실비가 3개가 존재하여 태실비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알수있어서 보물로 지정되었다고한다. 일제에 의해 모든 태실이 서삼릉으로 모아졌기 때문에 태실이 상대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다행이 이곳은 남은 석부자재들이 제대로 보존된 모양이다.
조선왕실에서는 전국 각처에 왕실의 태를 묻고 애기의 안녕과 왕실의 존엄, 백성에 대한 애민을 보여주려한 노력을 했는데 일제때 태항아리에 눈독을 들여서인지 모든 태실을 서삼릉으로 옮겼다. 그때 태항아리를 어떻게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현재 고려대 박물관에 가면 왕실 태항아리가 우연히 발견되어 국보(제17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를 보면 아마도 모든 태실에서 나온 태항아리는 국보급 유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명종태실은 다른 태실과 다르게 태봉이 너무 높다. 일반적으로 둥근 산봉오리 즉 금성체의 정상에 태실을 설치하는데 보통은 주변의 다른 산들이 더 높아서 태실을 바람으로부터 안전하게 감싸준다. 그러나 명종태실은 나홀로 우뚝솟아 바람의 영향이 크다. 이런 곳은 기운이 흩어지는 곳이어서 왕실의 태실로는 부적합 한 곳이다.
명종태실에 오르면 서산 목장의 푸른 잔디가 시원하고 주변 산을 속속들이 볼 수 있어 조망이 매우 좋다. 이런 곳은 아마도 관광객들이 좋아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진입로가 너무 가파라서 보통 관광객들은 선뜻 찾아오기가 어려운 곳이다. 서산목장과 잘 협조해서 산 중턱까지는 차량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 바란다.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瑞山 明宗大王 胎室 및 碑)
조선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그 태(胎)를 태항아리에 봉안하고 태실을 조성하였다.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 13대 왕 명종이 태어나던 1538년(중종 33년)에 의례에 따라 건립되었다. 태를 봉안한 태실(石室)과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 1기가 먼저 건립되고, 명종이 즉위한 후 1546년 ‘주상전하태실비’ 1기, 1711년 ‘주상전하태실비’를 재건하면서 비석 1기를 추가로 건립하여 현재 태실 1기와 비 3기가 전한다.
태실은 8각형의 난간석을 두르고, 중앙에 태실을 배치했다. 태실의 머릿돌은 8각의 개첨석(盖簷石), 받침돌은 사방석(四方石)이고 몸돌은 중동석(中童石)으로 구분된다. 태실에 봉안되었던 태항아리(태호, 胎壺)와 지석(誌石)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경 일제에 의해 경기도 고양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겨졌다. 이후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하여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보관하고 있다.
태실과 함께 만든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大君椿齡阿只氏胎室)’는 비석 받침구멍인 비좌(碑座)와 비문을 새긴 비신(碑身), 비신 위에 올리는 옥개석인 이수(螭首)로 구성되었으며, 조선 전기에 건립된 태실 표석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었다.
1546년 명종이 왕위를 이어받은 이후 태실을 가봉(加封)하면서 건립된 ‘주상전하태실비(主上殿下胎室碑)’는 비좌와 비신·이수를 갖추었는데, 비신이 대리석, 비좌는 귀롱대석(龜籠臺石, 거북과 용 모습의 돌)으로 만들어 위엄을 갖추었다. 1711년 추가로 지은 ‘주상전하태실비(主上殿下胎室碑)’는 1546년 조성되었던 본래의 귀롱대석 위에 비신과 이수를 새로 조각하여 건립하고 이전에 설치했던 비는 개수된 비의 오른쪽으로 옮겨서 설치하였다.
조선 왕실의 많은 태실이 본래의 자리에서 옮겨졌거나, 변형된 경우가 상당한 데 비하여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왕조실록』등에 관련 기록이 상세히 전해져 있고, 원래의 자리에 온전하게 남아 있으면서 주변 지형 등 환경까지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더욱 크다.
특히, 태실과 가봉태실, 가봉개수태실의 변천 과정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고 조선 왕실의 안태의례(安胎儀禮)의 역사적 자료이자 한국미술사의 태실 연구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뛰어나다.
<문화재청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보물 제1976호
문화재명칭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瑞山 明宗大王 胎室 및 碑)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문수골길 94-8
관리자(연락처)
서산시청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瑞山 明宗大王 胎室 및 碑) 안내판
▼명종대왕 태실 원경... 조선시대 태실은 거의 모두 둥근 봉우리 꼭대기에 설치하였다. 태실이 설치된 산을 흔히 태봉이라 부른다.
▼명종대왕 태실은 가파른 산을 올라야 한다. 아직 계단이 마련되지 않았다.
▼명종대왕 태실 답사에 나선 어르신들...
▼명종대왕 태실을 오르면서 바라본 들판... 가을 들판이 멋지다.
▼명종대왕 태실을 힘겹게 오른다.
▼명종대왕 태실 입구..
▼명종대왕 태실 입구의 대나무숲...
▼명종대왕 태실 진입로.. 태실의 뒷부분이다.
▼명종대왕 태실 전경...
▼명종대왕 태실
▼명종대왕 태실 비
▼명종대왕 태실 비 중 제일 오래된 비:1538년(중종 33년)에 건립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
▼명종이 즉위한 후 1546년에 세운 태실비 ‘주상전하태실비’
▼명종대왕 태실 비 : 1711년 ‘주상전하태실비’를 재건
▼명종대왕 태실과 태실비
▼명종대왕 태실... 너무 높고 주변의 산들이 낮아 바람에 놓여있다. 기운이 흩어지는 곳으로 좋은 곳이 못된다.
▼명종대왕 태실에서 바라본 서쪽 방향...
▼명종대왕 태실에서 바라본 서산 목장
▼명종대왕 태실 앞쪽 마을... 추수가 한창이다.
▼명종대왕 태실에서 함께하신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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